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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동양과 서양의 미를 수놓다...이승희 자수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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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9-01-28 | 조회수 | 848 |
동양과 서양의 미를 수놓다...이승희 자수명장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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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비즈]
자수는 헝겊·가죽 등의 표면에 실·끈·리본 등을 바늘이나 바늘 모양의 도구로 꽂아 수놓은 그림이나 도안을 말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모피나 식물의 껍질과 잎 등을 꿰매고 엮어 옷을 지어 입었던 것에 기원한다. 인류가 점차 문명화하면서 옷이나 기타 직물에 장식이나 계급의 표시 등을 위해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자수의 역할은 시간이 흐르면서 권위의 상징에서 직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조형예술로 변했다. 각 민족의 생활환경·풍습·신앙 등에 따라 유럽의 타피스트리나 중국·이집트는 물론 아프리카 민족까지 독자적 양식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자수 실물은 평양 석암리 일대 왕우 무덤(서기전 45~133년)에서 발견됐다. 0.2mm쯤의 깨알같이 둥근 모양을 사슬처럼 이어 반복해 이름 붙여진 사슬수 자수침법으로 넝쿨무늬와 구름무늬를 수놓았다.
6~7세기의 한국의 자수 양식은 일본으로도 전파됐다. 아스카 시대인 622년 성덕태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한 자주색 능문라(菱紋羅)의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이 대표적이다.
이후 한국의 전통자수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그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했다. 색실의 꼬는 방식, 수놓는 방법, 색감을 조절해 입체감도 만들고, 원근의 변화도 펼쳐낼 수 있게 됐다. 이제 전통자수는 사람의 손으로 따뜻한 체취를 담아 실로 이어지는 생동감이 묻어나는 우아한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 7일 취재를 위해 찾은 서울 인사동 이승희 전통자수연구소에서 제대로 된 자수를 처음 접했다. 연구소 벽에 걸린 자수는 천을 바탕 삼아 실과 바늘이 그려내는 다양한 문양이 그림에 못지 않았다. 실로 꿰매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린시절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들이 가정 수업 숙제로 만들던 그것과 천양지차였다.
이승희 대한민국 자수명장(63)은 "전통자수는 실과 바늘의 아름다운 여행이다. 자연과 수를 놓은 사람의 마음이 만나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다"고 말했다.
[출처:조선비즈]
몇 살 때부터 자수를 시작했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자수를 시작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떨어졌다. 공부를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재수를 하지 않겠다, 공부를 하고 싶을 때 다시 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당시에는 드물던 싸이클을 타고 탁구를 치며 말광량이처럼 지냈다. 어머니는 딸을 믿으셨지만 걱정이 크셨던 것 같다. 하루는 부르시더니 자수 얘기를 하셨다. ‘지금 네 또래 아이들 중에는 자수를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지금 배워두면 나중에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말괄양이 처럼 놀던 딸이 조금은 정숙해지를 바라는 엄마의 감언이설이었다."
설득이 됐나보다.
"말괄량이 14살 소녀가 무엇을 알겠나. 어머니의 말씀대로 자수를 하던 이웃집 언니에게서 자수를 배웠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 기모노 자수 일감이 많았다. 여기에서 1년 남짓 일을 배웠다."
처음부터 전통자수를 배운게 아니었나보다.
"한국·중국·일본 3국은 나라마다 자수기법에 차이가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집 언니에게 기초적인 기술을 배우며 실력을 쌓았다. 나름 실력이 쌓였는지 1년만에 인간문화재 80호인 최유한 선생님의 자구연수실로 옮겨 전통자수를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탁구를 치고 싸이클을 타던 체력 덕분에 남들보다 집중력이 좋았고, 배우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다. 선생님으로부터 솜씨를 인정받아 23살이 되던 해에 사범 자격증을 받았다. 나중에는 연구실 실장을 맡아 사실상 모든 실무를 총괄했다."
연구실에 다니면서 공부도 했던데.
"20대 중반에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자수를 위해서는 조상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밑그림으로 이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직접 밑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터라 미대에 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부터 다녀야 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를 선택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미술학원도 운영했다. 물론 엄청 고생했다. 학교·직장·개인작업·학원운영까지 4가지 일을 병행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냈을 것 같다.
"싸이클과 탁구로 만든 기초체력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루에 4가지 일을 하느라 3~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강철 체력이라고 자부했지만 피로가 쌓이더라. 매일 코피를 흘렸다. 일을 하다가 졸도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노력 끝에 대학에도 진학했다. 일하고 공부하느라 결혼도 못했다."(웃음)
대학에선 공예가 아니라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당시 자수기술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자수 밑그림으로 민화를 주로 사용했는데 밑그림을 독창적으로 그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민화를 추상적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공예과 대신 부산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그결과 지금은 다른 자수 전문가들과 느낌이 다른 서양화와 전통자수를 결합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출처:조선비즈]
해외전시회도 활발하게 하는 것 같다. 반응은 어땠나.
"첫 해외전시회시는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 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져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당시 전시회를 처음했다. 한국 자수하는 사람 중에서는 처음이었는데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이후 일본, 미국 등지에서도 전시회를 했다."
전통 공예하시는 분들은 한복을 주로 입으시던데.
"전시회 등 해외활동을 할 때는 주로 한복을 입는다. 전통공예를 한다고 주로 한복만 입으라는 법이 있나. 사실 음악도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한다."
누구를 좋아하는가.
"감각적이고 예술성이 충만한 가수를 좋아한다. 요즘 젊은 가수들 중에 그런 친구들이 많은 것같다. 빅뱅의 지드래곤이 딱이다. 옷도 원색으로 잘 입는 것 같다. 노래는 지드래곤의 ‘사랑먼지’ 무척이나 좋아한다."
성공비결에 대해 얘기해달라.
"누구나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시간은 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의 질 높게 쓰려면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돼야 한다. 또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무한히 노력해야 한다. 아직도 1년에 2개 정도의 목표를 세우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출처:조선비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혁신학교 수업을 다니거나 명장 체험학교 수업을 꾸준히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접하면 나중에 전통문화에 익숙해진다. 그래야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가 발전한다."
그는 숙명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전통자수 강사와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학과 전통자수 전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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