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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류의 다도와 베일벗는 군산의 茶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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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4-10 조회수 1809

일본류의 다도와 베일벗는 군산의 茶文化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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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의 역사속에 떠오르는 군산의 또다른 얼굴
일본류의 다도와 베일벗는 군산의 茶文化
글 / 최석환(본지 발행인) 사진 / 전규삼(본지 객원사진기자)


차문화관련 잡지사진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이진수 교수는 '차의 세계'와의 인터뷰를 통해 군산의 차 문화를 조명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월간지 '차의 세계'는 2002년 창간해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차를 소개하고 안내하고 있다.


군산은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근대 역사문화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인이 군산에 정착하면서 적산가옥을 짓고 살게 되었다. 군산은 일본에 쌀을 실어 나른 항구 도시였다. 현대의 군산은 적산가옥을 보기 위해 해마다 200여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군산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 땅에서 일본 문화를 만나고 일본의 향수에 젖고 있다. 그런데 히로쓰 가옥을 보고 일본의 향수에 젖는 사람들은 많아도 완벽한 일본 다도의 원형인 다도문화에 빠져드는 관광객은 없는 것 같다. 정유년 1월 12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에 들러 군산에 흐르는 일본 다도를 발견하게 되면서 군산의 과거와 현재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편집자 주


베일벗는 군산의 차문화절
 군산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를 찾아간 것은 1월 12일이었다. 이 절의 주지인 종걸 스님과의 해후는 석전 박한영(1870~1948) 스님의 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동국사 법당을 참배했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법당 옆 쪽문을 열고 주지인 종걸 스님을 만나 이런저런 다담을 나누다가 동국사를 빠져나왔다.


 다음날 한 신문에 커버스토리로 ‘이 땅에서 만난 일본’ 이라는 군산과 관련된 기사가 터져 나왔다. 자세히 살피니 1930년대의 시간여행이었다.


 뜻밖에도 적산가옥이 170여 채나 아직 남아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아쉽게도 차문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단숨에 적산가옥들을 살피다가 일본식 정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알았다. 로지로 이어진 차실로 들어서며 도쿠노마 등이 갖추어졌다. 


 1930년 일본인이 군산에 정착하면서 건립된 적산 가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같은 풍경이 일본 교토의 대덕사 풍경을 그대로 옮ㄱ 놓은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200만 명이 군산을 다녀갔지만 군산에 흐르는 일본류(日本流)의 다도(茶道)을 눈여겨 지켜 본 사람들은 없었다.

군산의 차를 이야기하다.


 군산 회현면에서 자라는 야생 차 나무를 찾아간 것이 벌써 17년이나 흘러 버렸다. 그때가 2001년 3월 23일이었다. 필자와 함께 당시 한국차문화 협회 이귀례 회장과 유성열 이사 등은 야생차 군락지를 확인하고 감격해했다.

 
 그리고 익산군 옹포면 봉화산 남서쪽 계곡 임해사에 차나무가 종종 발견되면서 차의 북방한계선인 북의 36°03°으로 북상시켜 버렸다.


 국제 티클럽 이진수 총재(당시 한국 차인회 이사장)와 군산 차인회, 전북 차사랑 대학생 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2001년 9월 13일 회현면을 다시 찾아갔다. 당시 이진수 총재는 차나무 군락지를 보고 “군산은 그동안 어느 지역보다도 유난히 많은 차인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나무가 없다는 실에 적지 않은 실망을 했었는데 옥구에 차가 생산되었다는 문헌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차였다. 특히 최근 군산시와 군산농업기술센터에서 차나무 재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터에 차나무가 발견된 것이라 더욱 큰 기쁨이었다”고 회고했다.


 익산시는 응포면 일대에 자생하는 차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한민국 최북단 차나무 군락지로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해마다 옹포면의 차나무 군락지 일원에서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익산 차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국차문화협회를 설립한 이귀례 이사장이다. 군산 회현면과 인접한 대아면이 고향인 그는 어렸을 때 군산 적산가옥의 로지와 차실을 보고 차를 흠모했다. 그 후 1980년대 초반 일본 다도에 정통한 윤규옥을 찾아가 청파동에서 1년간 차 예절을 배웠다. 뒤에 인천시 무형문화제 11호인 규방다례기능보유자가 되었다.


 두 번째 주목하는 사람은 시인 고은이다. 그는 동국사에서 출가불문(佛文)에 귀의했다가 환속했다. 그 밖에도 황병기를 비롯, 차병원 설립자 등이 각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잇다.


 세 번째는 이진수 총재를 들 수 있다. 군산 차문화축제를 29회째 이끌어 오면서 군산 차문화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히로스가옥을 차문화제 체험 공간으로 건의하는 등 그의 차에 대한 역정은 남달랐다.


 이상과 같이 한국 차를 사랑했던 차인이 있었기에 일본의 다도가 군산에 침투되지 않고 한국문화가 부흥될 수 있었다고 본다.


차를 찾아 떠난 시간여행
 오늘의 군산으로 떠나는 수많은 인파들을 두말 할 것 없이 시간여행에 관심이 높다. 시간여행의 핵심은 1930년대 지은 일본식 가옥으로 외지인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와 문화를 진지하게 관람하기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본식 가옥을 관람하는데 급급하다. 필자가 지난 2월 13일 아침 군산의 적산가옥이 밀집지인 신흥동 일대의 일본식 히로쓰 가옥을 찾아갔을 때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급급해 보였다. 


 히로쓰 가옥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여성에게 “어떻게 히로쓰 가옥을 찾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일본식 적산가옥을 한 번 오고 싶어서 찾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군산을 찾는 사람들은 군산의 시간여행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이처럼 군산이 시간여행으로 자리매김한 까닭은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쌀 무역으로 경제군력을 틀어쥔 일본 부호들이 살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해방이 되자 자신이 살던 집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흥동의 히로쓰가옥을 중심으로 시간여행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신흥동에 이르면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있다. 그 앞에서 옛 기억을 회상하며 사진을 찍는 인파들이 많았다. 또 하나의 풍경으 70년 전통을 지닌 이 성당 빵집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의 적산가옥들은 정원과 로지로 이어지는 치밀한 건축설계와 차실을 갖추고 있어 일본인 다도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군산사람들은 시간여행에만 매달리다보니 정작 잊고 있던 차문화(茶文化)를 모르는 것 같다. 그 점을 안타깝게 느끼고 군산 차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게 되었다.


군산에서 만난 일본 다도(茶道)
 서울에서 2시간 30분 거리인 군산은 그야말로 일본의 적산가옥이 많기로 소문났다. 군산의 시간여행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히로쓰 가옥을 찾아 간다. 히로쓰 가옥은 일본 목조가옥으로 지붕과 외벽마감 내부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의의가 크다.


 드라마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이 가옥에서 음악회를 비롯 많은 문화행사가 이루어지고 있ㄷ. 지금은 붕괴위험이 높아 내부공개는 금지되어 있다. 히로스 가옥의 중요성을 인식한 군산시는 군산시 문화관광자원화 확대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일한으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 합리적 활용 방안을 위해 히로쓰 가옥을 위한 운영 제안서를 세계 차문화 전시관과 일본문화 특별관을 운영하는 제안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군산 사람들은 적산에 살아가면서 차문화의 향수를 잊고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 차에 관심이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군산 회현면 일대의 야생차 군락지를 찾아와 우리가 잊고있던 차나무를 살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지금의 군산시의 많은 적산가옥 중 완벽한 일본식 정원을 갖춘 곳은 히로쓰 가옥과 유희주씨의 사가와 안채 이경산(80)의 적산가옥, 엄대우씨의 서양식 적산가옥 등 몇 채에 불과하다.


 전날 1월 11일 밤 우연히 미다원의 송미숙 원장을 만났는데 2층으로 된 일본식 건축물인 미다원은 전승문화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는데 도쿠노마를 갖춘 차실 공간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군산 사람들은 도쿠노마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본 다도의 흔적을 지우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적산가옥 곳곳에서 일본류의 다도를 만날 수 있었다. 군산의 시간여행은 바로 적산가옥에서 느낀 일본 다도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다.
 
군산의 적산에서 느낀 일본류의 다도

 군산의 적산가옥 중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이경산 씨의 가옥이었다. 문(門)을 열고 들어서자 일본 교토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이 집의 주인인 이경산 씨가 반겨주었다. 차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우리를 우물로 안내했다. 우물 옆에는 족문이 있어 언제든지 물을 길어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쪽문을 따라 들어서면 큰 방이 나왔다. 그 옆에 도쿠노마가 있고 그 옆에는 조상신을 모신 단이 있었다. 지금은 개조되어 옛 모습을 볼 수 가 없다. 큰 방문을 열고 창문 사이로 창밖을 바라다볼 때 교토의 다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는 이경산 씨는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창문 사이로 밖을 바라다보면서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이 반해 좀처럼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니 차를 끓이는 화로와 솥이 있었다. 이 사람이 차의 일가를 이루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일본 건축 연구가가 이경산 씨 집을 찾아와 취재해간 사진이 담겨있는 책을 보며 알 수 있고 일본인이 이 집을 자주 찾아오는 까닭은 일본 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이경산 씨가 이 집에 들어온 것은 1966년이었다. 당시 광주에 살다가 이사를 왔는데 아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기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불편한 점은 있지만 50년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정이 들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산시 월명동에 자리한 어대우 이사(김대중 기념사업회)의 집은 네덜란드식 일본가옥으로 유명하다.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이 집은 엄대우 씨가 고등학교 시절에 구입했는데 자신이 차를 좋아해 차 도구들이 방안 곳곳에 가득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는데 도쿠노마와 신전을 모신 사당을 갖추고 있었다. 도쿠노마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다담을 나누었다.


 그는 도쿠노마 바로 옆의 거실 한 쪽을 차실로 개조하여 문화 싸롱으로 가꾸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군산의 이름난 사가와의 유희주 씨가 살고있는 안채는 완벽한 일본 차실을 갖추고 있다고 바깥채는 사가와도 커피숍인데 일제강점기 시기 번성하였던 전당포 사가와 금고이름인데 지금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집은 그대로 군산에 몇 채 되지 않는 일본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바깥채인 사가와는 한 때는 국제 티클럽이 홍차 가게를 운영했다,


 사가와 홍차 가게를 운영했을 당시 안채에서 2008년 7월 20일 국제 티클럽의 초청으로 일본 오노테센케의 다찌바나 선생이 기모노를 입고 말차로 격불하는 장면이 이색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동양미술학자인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박사가 남긴 ‘한국의 고려다완과 일본 다도’라는 글이 스쳐갔다. “교토에서 만약에 특별한 차회(茶會)행사가 있었다고 하자. 그럴 때 십중팔구 차를 마신 후 손님들은 그 찻그릇을 두 손에 받쳐들고 조심스럽게 두들겨 가면서 모래가 두둘두둘 두드러져 나온 바닥과 혹처럼 불거져 나온 표면을 장식한 균열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며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럴 때 흔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감탄사가 ‘고라이 자왕’이다. 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고려다완, 즉 한국에서 만든 찻그릇이라는 뜻이며 일부 일본인들이 신(神) 바로 다름으로 떠받드는 대단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 글을 살펴보면 사가와에서 일본차인이 백자다완이 아닌 고려다완으로 말차를 내놓았다면 코벨박사가 던진 고려다완과 절묘하게 만나게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군산의 시간여행을 빼 놓을 수 없는 공간은 바로 동국사이다. 동국사는 1930년 일본 승려 우치다 대사에 의해 건립된 조동종 사찰이다. 처음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건립했는데 해방 이후 김남곡 스님이 인수하여 동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절의 주지인 종걸 스님은 ‘일본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워 뒤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군산에 흐르는 일본 다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군산에 흐르는 일본류의 차도를 살펴보면서 한국차문화 회복을 위해 앞장서운 차인들이 있었기에 일본 다도에 물들지 않고 한국 차문화를 꽃 피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산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차나무 북방 한계선을 북위 36도 선으로 끌어올린 역사적 차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일본 다도가 성행했던 곳이다. 지금은 일본의 적산가옥이 있고 완벽한 정원이 갖추어져 있어 차의 안목을 갖고 군산의 적산가옥을 쫓아 가보면 일본류의 다도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군산의 시간여행을 뒤돌아보면서 일본 교토를 가지 않고서도 일본 적산가옥의 차실에서 일본 다도를 체험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군산을 한국 차문화의 메카로 키워나가겠다 석천(본지 편집위원)
항구도시 군산이 차문화의 메카로 부상하게 된 데는 사단법인 국제티클럽을 이끌고 있는 이진수 총재의 공이 크다. 그가 30여 년을 뛰어넘는 세월을 차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차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89년에 군산과 인연을 맺으면서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호원대, 우석대, 전주대, 전주교대 대학생 다도강연과 성년례를 시작하면서 다도 문화를 시작하였다.


 1993년에는 한국차인회를 설립하여 매년 한국명전(전통차예절겨루기대회)을 열어 차문화를 선도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 나오는 중정(中正)을 통해 한국 차문화를 이끌어 왔다.


 군산은 일제 강점시기 쌀 무역으로 경제권을 쥔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일본류의 다도가 성행했던 곳이다. 이 척박한 땅에 차문화 부흥의 기틀을 세운 이진수 총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산 차문화 발전을 위해 군산 사가와에 홍차 가게를 열어 차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2017년 나포리에 홍차 가게를 재 오픈하여 차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2006년 5월부터 시작한 대구 티엑스포는 올해 12회째를 맞고 있다. 또한, 2007년 제11회와 2013년 제 14회 무아차회를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제 차문화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익산 차 축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차 행사를 개최하여 차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 총재는 차계 처음으로 국제차문화학회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로 선정되어 한국 차문화를 선도함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번에 군산 차문화를 조망하면서 이진수 총재와 나포리 홍차 가게에서 이 총재의 차에 대한 철학을 듣게되었다.


-30여 년 전 군산에 처음 정착한 이후 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까?
 “30여 년 전 군산에 처음 정착했을 때 청소년 상담을 시작했어요. 청소년들에게 차의 순화가 시급함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당시 이건재 군산시장을 찾아가 관사를 문화공간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어요. 시장님이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이 시장님께서는 관사를 비워주고 전세집을 얻어 살게 되었지요. 이후 시장관사는 군산 여성 예지원이 되었어요.


-이 총재께서 청소년에 관심이 있던데 늘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차는 몸가짐, 마음가짐을 갖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부터 마음이 바르고 건강해야 차문화가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이 총재께서는 군산 회현면 야생차 나무 군락지를 보고 군산의 차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지 않았습니까?
 “2002년 9월 13일 <차의 세계> 최석환 발행인, 군산차인회회원과 전북 차사랑 대학생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군산 회현면에 있다는 야생차 군락지를 찾아 나섰지요. 흔적 없는 길을 찾아 여러차례 헤매다가 산열매인 얼음군락 덩굴을 터널삼아 수차례 뚫고 뚫어 드디어 야생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감격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후 야생차에 관심을 가지고 원불교 나포리 교당에서 가까운 옹포 야생차 군락지를 오를 때마다 심하게 훼손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익산시에 건의하여 지금은 야생차 군락지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으니 기쁜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한 수 앞서가고 있어요. 어느 일본 차인이 익산의 야생차 나무를 조사하려 찾아왔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어요.”


-군산 차문화의 부흥에 남다른 이 총재께서는 군산 사가와에 홍차 가게를 열고 차의 저변 확대를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군산 사가와는 일제시기 전당포를 운영했던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고, 금고를 만든 회사 이름을 그대로 본 떠 사용했는데 그 사가와에 홍차 가게를 열고 사가와 안채에서 일본차 체험을 한 적이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히로쓰 가옥을 위탁 운영하기 위해 제안서를 시에 건의했으니 차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실현되지 않았음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미래를 위한 차 문화의 발전을 위해 제안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차문화가 200~300년을 가려면 지도자를 양성하고 대중화를 통해 차문화를 생활화하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될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학문적인 체계와 학술적인 교육프로그램 정립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또 차문화 콘텐츠 연구를 통해서 생활 속에서 쉽게 차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제다 원행을 찾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이총재는 반기면서 한국제다의 원행을 찾는 것이 한국 차문화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차의 원행은 제다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시기 근대로 이어지는 제다 원행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차의 세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삼국의 연결선상에서 제다의 공통연구를 해봤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난파선처럼 엉켜있는 한국 차문화계에 던지는 메시지 한 마디 당부 드립니다.
 “저는 늘 말씀했지만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나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중정(中正)의 마음가짐으로 한국 차문화계가 화합하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수 총재와 나눈 군산의 차에 대한 긴 이야기는 군산 차문화를 뛰어넘어 전 세계의 차 교육기관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한국 차문화를 살리는 초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차 가게에서 맛 본 향기로운 홍차향이 내 마음까지 향기롭게 해주었다.


이진수 총재
사단법인 국제티클럽 총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국체차문화학회 회장(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사단법인 한국복식과학재단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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