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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다섯살때 남사당 새미로 데뷔… 일곱살에 대통령상 받은 ‘장구 신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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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5-21 | 조회수 | 722 |
다섯살때 남사당 새미로 데뷔… 일곱살에 대통령상 받은 ‘장구 신동’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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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문화일보
김덕수 명인은…
김덕수 명인은 6·25전쟁 중인 195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김문학)가 소속돼 있던 남사당 새미로 연희 마당에 데뷔했다. 새미는 인간탑 꼭대기에서 춤을 추는 무동이다. “다섯 살 때 프로가 된 셈이지요. 쬐끄만 아이가 곡예적 연기를 하는 것인데, 이런 무동에 대한 기록이 신라 때부터 나옵니다.”
그는 남사당 예인들에게서 악기를 다루고 줄을 타는 등의 갖가지 기예를 배웠다. 일곱 살 때인 1959년 전국 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장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1960년대에 남사당에서 ‘국산품이동선전단 낙랑악단’으로 넘어가 전국을 다니는 공연에 참여했다. 국악예술학교(현국립전통예술중고)에 입학한 후엔 한국민속가무예술단 일원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화사절단 역할을 했다.
1978년 ‘사물놀이’를 탄생시켜 국내외 공연을 통해 우리 음악의 흥겨움과 아름다움을 전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사단법인 한울림을 통해 사물놀이를 보급하는 기획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때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제자들도 받아 함께 숙식하는 신촌 ‘라이브하우스 난장’ 등을 운영했다. 대중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 장르와 섞이는 실험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는 마흔여섯이던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가 된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로 초청받았는데, 우리 국립 예술대에 연희과가 생긴다니 필연처럼 가게 됐지요.” 그는 연희과 전공 실기 10개 교재를 만들었다. 연희 현장에서 대중화와 전승, 교육에 대해 깊게 고민해왔던 내용을 담았다. “그렇게 하고 나니 20년이 훌쩍 갔더군요.”
2018년 한예종을 정년 퇴임하고, 지금은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사이버로 전 세계인을 가르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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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때 남사당 새미로 데뷔… 일곱살에 대통령상 받은 ‘장구 신동’ [출처: 문화일보, 장재선기자,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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