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기덕 쿵덕~.”
대전 탄방동에 자리한 사물놀이 그룹 ‘발림’에서 오늘도 신명 나는 소리가 울린다.
“그렇죠! 낭창낭창 수양버들처럼 어깨를 움직여보세요.”
지역 장애인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는 남인수 씨(44)의 손놀림이 더 빨라진다. 휠체어에서 강의를 펼치는 모습이 조금 생소할 뿐, 구슬땀을 흘리며 학생들에게 몰입하는 모습이 어느 면으로 보나 전문 강사 못지 않다.
남인수 씨는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서야 수업을 끝냈다. 이십 대 청년만큼이나 환한 얼굴로 다가오는 그를 보니 책상머리 기자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인다.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전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국악을 가르치는 동시에 원광디지털대 전통공연예술학과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인 것이다.
1급 장애인으로, 국악을 전파하며 배움을 나누고 있는 남인수 씨. 단순히 ‘늦깎이’라고 표현하기엔 미처 다 담아낼 수 없는 그의 알찬 꿈과 당찬 도전기를 쫓아가 본다.
“13년 전 불의의 사고로 장애 판정을 받은 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어요. 사람이 바닥을 치니까 오히려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다는 막연한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때, 마침 사물놀이를 하는 선생님께서 장구를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국악을 접하게 됐지요”
전통공연과 사물놀이에 문외한이었던 남인수 씨. 더군다나 5년 전 처음 장구를 대했을 때만 해도 그는 10분 이상 장구를 치는 것이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힘든 재활운동을 견디며 낙심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재활기간 동안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며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치료받고, 재활하는 과정을 보면서 제 힘으로 장애를 극복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애인은 문화와 교육의 혜택을 받기가 힘들지요. 때문에 제가 열심히 배워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다시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신체적 장애로 얻은 또 다른 능력, 그리고 원광디지털대학과의 만남
신체적 장애가 또 다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재활과 함께 사물놀이 연습에 매진했다. 이제 그는 2~3시간 계속해 장구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호전되었음은 물론,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의 배움을 통해 더 큰 꿈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국악에 한창 빠져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사이버대학교 중 원광디지털대가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전통공연예술학과는 이론 못지않게 실습이 중요한데, 원광디지털대학교는 사이버대학교 중 최다로 지역 실습센터가 있어 학습전달 체계가 아주 견고하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장애인이라는 특성 상 오프라인 대학에서 받기 힘든 교육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그는 원광디지털대 전통공연예술학과만의 가장 좋은 커리큘럼으로 단연 하계, 동계 워크숍을 뽑았다. 3~6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전국 각지의 학우들이 참석해 자기 특성에 맞는 공부 법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고민했던 문제들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학기 중에는 매일 시간을 내어서 연습실을 찾는 것이 일과입니다. 저는 천안센터의 김철기 교수님께 찾아가 배우는 한편, 시간이 날 때마다 온라인 수업을 듣곤 합니다.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국에 퍼져 있는 학우들과 같이 배우면서 또 각자의 지역에서 국악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학우들과 사귀면서 그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원광디지털대학교만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배워서 남 주자’, 남에게 나누기 위해 배운다
우연한 기회에 장구로 시작된 그의 국악사랑은 이처럼 원광디지털대학을 거치며 무르익게 되었다. 전통공연을 배움으로써 시작된 그의 제2의 인생은 이제 졸업을 앞두고 ‘가르침을 통한 나눔’으로 귀결되고 있다. 사실 가르침은 배움과 함께 그를 성장시킨 동력이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대전서구사물놀이패가 만들어졌습니다. 부족하지만, 그곳에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알려드릴 기회도 생겼고요. 1년 동안 진행되었던 교육기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나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자신을 위한 배움에 머물렀다면 느끼지 못했을 또 다른 깨달음도 크고요.”
결실도 맺었다. 그가 주도한 ‘영남농악공연’이 얼마 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그 결과 행사 공연섭외도 제법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열정을 다하고 기본에 충실 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뛰어난 연주 기술이 있다고 해도 관객과 동화되지 못하면 살아 있는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경력이 짧아서 음악에 대한 깊은 철학은 부족합니다만, 현란한 연주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희망을 설계하며
지난 4년 동안 그는 전통공연을 배우는 학생, 장애인협회의 일꾼, 국악을 전파하는 선생님으로 1인 3역을 해왔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힘든 고비를 통과하며 하루하루의 희망을 설계했다.
“지금도 차 안에서 꽹과리를 치면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는 아내가 사실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그리고 천안센터의 김철기 교수님과 학우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죠. 처음 센터를 방문했을 때 교수님께서 휠체어를 타고 있던 저를 3층까지 이끌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동원 교수님께서 본인도 장애인이라며 크게 미소를 지어주셨는데요. 그 미소가 아직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되고는 합니다.”
고마운 사람이 많다는 건, 그 자신이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는 전통공연에 관심이 있거나 배움을 망설이고 있는 예비 후배들에게도 도움의 말을 전하길 잊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 전통공연에 관심이 있다면 시작이라는 단어가 퇴색되기 전에 꼭 도전하세요. 다만, 국악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이 탄탄해야만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남인수 씨는 요즘 졸업 연주회를 앞두고 설장구와 삼도농악에 매진 중이라고 한다. 다양한 국악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 목표인 만큼 망설임과 두려움은 없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쿵기덕 쿵덕~.’ 그의 도전을 응원하며 흥 한 자락을 덧붙여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