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에 비친 WDU
| 제목 |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0> 부부 작가 박경옥 강찬영 | ||||
|---|---|---|---|---|---|
| 첨부파일 |
|
등록일 | 2026-03-12 | 조회수 | 35 |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0> 부부 작가 박경옥 강찬영
2026-03-12
-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명퇴 남편과 아내 新생존동맹…공부로 ‘찐나(진짜 나)’를 찾았다
◇ 박경옥 강찬영의 인생이모작 귀띔
- 부부가 함께 현실을 받아들이고 소통하고 공부하며, 진짜의 ‘나’로 사는 시간을 만들어라
퇴직은 한 사람의 직장이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한 가정의 질서가 다시 짜이는 순간이다. 27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임원까지 올랐던 남편이 53세에 회사에서 나왔을 때 무너진 것은 직함만이 아니었다. ‘사모님’이라 불리던 아내의 삶에도 지진이 일어났다. 그 지각변동 속에서 어떤 부부는 각자도생의 길로 흩어지고, 어떤 부부는 서로의 손을 더 단단히 잡는다. 이번에 만난 부부는 태풍 같은 퇴직을 통과하며 ‘사랑’에서 ‘동맹’으로 진화한 경우였다. 옛 벗이기에 서울에 사는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경옥 작가가 남편의 퇴직 후 가정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를 소재로 쓴 책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출간을 기념하며 남편 강찬영 작가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국제신문]
-남편이 퇴직을 통고받고 오던 날 심정은 어땠나요.
▶한마디로 태풍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꿈과 생활 전반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충격이었어요. 마음 한편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불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태풍 같은 충격이었죠.
-(남편에게) 그때 퇴직을 한 당사자로서 심정은 어땠나요.
▶저는 오히려 천국 같았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해서 잘린 것도 아니었고, 구조조정의 압박 속에서 매일 출근하는 시간이 정말 지옥 같았거든요. 그렇게 시달리다 임원진 10여 명과 함께 퇴사가 결정되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오히려 조용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던 강찬영(65)은 회사 구조조정으로 53세에 퇴직했다. 국내 최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3년 당시 산업정책의 혼선 속에서 결국 파산의 길을 걸었다. 53세라면 경륜도 있고 앞날도 넉넉히 펼쳐질 나이다. 그러나 퇴사 후 지난 10여 년 동안 그의 인생이모작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의 퇴직이 가정에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이 퇴직하고 나니 어떤 것이 가장 힘들던가요
▶처음에는 사생활이 사라진 것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주말과 휴일마다 외부 활동을 하던 남편이 이제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제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져 버렸죠. 남편은 직장을 잃었고 저는 공간을 잃은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불편함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더군요. 훨씬 더 절박한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절박했나요.
▶경제 문제였죠. 돈 문제는 늘 구체적이니까요. 생활비 문제와 함께 기존 방식으로 계속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였어요. 돈 문제 뒤에는 자존심도 늘 함께 따라붙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남편에게 이른바 ‘은퇴남편증후군’ 같은 모습이 보여 더 힘들었습니다.
-은퇴남편증후군요?
▶한동안 남편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곧 예전 같은 대우를 받으며 재취업할 수 있다고 믿더군요. 그러니 골프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며 골프장에 다니는 거예요. 현실과 동떨어진 행동처럼 느껴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인지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고, 저는 당장의 현실이 더 절박했습니다. 같은 배를 탔지만 노를 젓는 방향이 잠시 달랐던 셈이죠.
예기치 않게 조기 퇴직을 맞은 사람들은 흔히 ‘퇴직증후군’을 겪는다. 주변에 알리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 앓거나 억울함 속에서 상황을 부정하기도 한다. 강찬영 전 상무 역시 당시 재취업 시장의 냉혹함을 아직 체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에게 물었다. 역량을 많이 인정받으셨는데 동종 업계 재취업은 안 되었을까요.
▶부산에 초저온 냉동창고를 짓는 큰 프로젝트를 맡아 좋은 조건으로 1년 넘게 일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 후에는 업계 재진입이 쉽지 않더군요. 해외 경험도 많고 스펙도 나쁘지 않았지만 시장의 논리는 달랐습니다. 젊은 시절 저의 강점이었던 그 경력을 어떤 조직에서는 자리를 위협하는 부담으로 여기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깨의 힘을 완전히 빼고 새로운 경제 대책을 세웠습니다. 사실 퇴직 후 이 단계에 오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유학 중이던 대학생 아들에게는 퇴직금을 쪼개 보내며 자립 의지를 심어 주었고, 우리 부부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골프채와 자동차도 모두 처분했습니다.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던 대기업 임원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지워 버린 셈이지요.
은퇴증후군에 빠졌던 조기 퇴직자도 2, 3년쯤 지나면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삶은 결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부부 사이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부부는 각자도생을 택하지만, 평소 소통이 잘 되던 이 부부는 오히려 ‘생존동맹’을 더 단단히 했다고 한다.

[한진해운 전 상무인 강찬영 시니어 웹툰 작가의 습작 그림.]
[출처: 국제신문]
-다시 수입을 늘렸겠지요.
▶부부는 애정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경제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사랑만으로는 생활이 굴러가지 않지요. 그래서 저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남편의 수입이라는 열선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어항 속 구피와 같았더군요. 그런데 이제는 그 어항을 깨고 강물 속으로 나가 유영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재취업을 기다리기보다는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강의를 했다구요?
▶50플러스센터에서 하던 감정조절법 무료 강의를 유료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우연한 계기로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7쇄까지 찍으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의 직함과 무관하게 사회와 연결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짧은 시간에 그렇게 7쇄나 찍는 작가가 되다니 믿기 어렵네요.
▶공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공부는 ‘쿵푸’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수련이라는 뜻이지요.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여성일수록 남편보다 더 많은 지적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2막의 사람들은 배우고, 익히고, 나누고, 다시 가르치며 더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마흔 이후에는 10년 주기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와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 의미 있는 시작이었군요.
▶남편은 늘 저를 지지해 준 사람입니다. 제 마음속에 든든한 ‘정서 보험’을 채워 준 사람이지요. 그래서 남편이 힘들 때 그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스스로를 진화시키기로 했습니다. 퇴직이라는 태풍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새로운 동맹을 만들게 된 셈입니다. (웃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인문학 교실에서 내공을 쌓아온 덕분이었을 것 같다. 어쨌든 남편의 퇴직기를 통과하며 그녀는 자신의 지식을 생산하는 ‘박경옥 작가’가 되었다. 곧 ‘이젠 나로 살겠습니다’라는 새 책도 출간할 예정이라니 삶은 참으로 신비롭다.
-(남편에게) 그 뒤엔 재취업에 성공하셨나요.
▶재취업 시장을 두드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설령 더 좋은 경제활동이 있더라도 제 시간과 삶의 균형을 지켜야겠다고요. 그래서 지난 6년 동안 오후에만 일하는 택배 분류 작업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원광디지털대학에 입학해 오전에는 동양철학과 인도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며 알게 된 우주 변화의 원리를 웹툰으로 그려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인 ‘시니어 웹툰 그리기 명상’에는 이미 50편이 넘는 웹툰이 올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인생 2막 스토리는 대중매체에서 꽤 보도되었어요. 현재 사람들의 잠자는 본성을 깨워 주는 신명 상담 웹툰 작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부에게) 퇴직자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퇴직 이후의 삶에서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면 위험합니다. 우리의 경우 몇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먼저 가정에서의 의식주 같은 기본 생활에서부터 남녀 역할에 묶이지 말고 하자고요. 당연히 경제활동은 자기 삶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직함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누구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의 공부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방식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식들에게도 “참 의미 있게 사신 부모님”이라는 유산을 남길 수 있겠지요. 이렇게 인생 2막은 퇴직 이전의 살던 방식을 복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진짜의 자기 삶을 찾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국제신문]
한국 사회에서 조기 퇴직은 추락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퇴직은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남편 강찬영은 대기업 임원에서 택배 노동자를 거쳐 웹툰 작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아내 박경옥은 전업주부에서 강사와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세웠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서로를 지탱하는 부부의 동맹, 그리고 쿵푸라 할 정도로 다시 배우는 공부의 힘이 있었다. 이 부부가 특별한 이유는 퇴직을 추락이 아니라, 인생 2막에서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출발점으로 함께 바꾸어 냈다는 데 있다.
[기사 바로가기]
| 이전글 | 원광디지털대 요가명상학과 '에너지 요가 워크숍' 개최 2026-03-12 |
|---|---|
| 다음글 |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
콘텐츠 담당부서입학홍보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