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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인터뷰] 민화 작가 조태정 “차로 다스린 뒤 붓을 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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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6-03-20 | 조회수 | 24 |
[인터뷰] 민화 작가 조태정 “차로 다스린 뒤 붓을 들다“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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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그림이 주는 공통된 매력 '마음의 수양'"
3년 인고 거쳐 '금강산도'·'태평성시도' 완성
"정말 재미있었지만 진저리나게 힘들기도 했다"
민화 작가 조태정은 차(茶) 전문가기도 하다. 차로 마음을 편안하게 한 뒤 그림을 그린다는 조 작가는 차와 그림이 '마음 수양'이라는 공통된 매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대표작 '금강산도'와 '태평성시도'를 그렸던 인고의 시간 또한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었다. 조 작가는 이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지만 때로는 진저리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의 민화에는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한계에 도전하는 한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겼다.

[조태정 작가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문화의거리에 있는 갤러리은에서 그의 민화 작품 중 '기명절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신아일보]
지난 18일 서울 인사동문화의거리,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모를 것이 우산을 펴기도 접기도 애매하게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이 길 어디쯤 있는 '갤러리은'에서 두 번째 개인전 '金剛(금강), 다시 걷는 길'을 연 조태정 작가를 만났다.

[조태정 작가가 그의 작품 중 '금강산도'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신아일보]
조 작가는 민화(民畵)를 그린다.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 산수, 화조 따위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사전에 담긴 민화는 이런 것이긴 하나, 그림을 글로 표현하는 건 역시 어렵다. 조 작가의 작품들을 보니 글로 공부했던 민화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감이 온다. 자연, 동식물, 그리고 인간사가 예스럽게 담겨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조태정 작가는 대표작 '금강산도'를 중심으로 그의 내면적 사유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작가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 차로 마음을 편안하게

[조태정 작가의 금강산도]
[출처: 신아일보]
조태정 작가는 민화보다 차를 먼저 시작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 2003년 개설 첫해 입학해 조기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이론 공부와 행다(行茶, 차를 달여서 대접하거나 마심)를 지속했다. 차문화 강의를 할 정도로 전문성을 쌓았다.
조 작가는 "차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던 그때는 평생 차를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민화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지만 차가 조 작가의 손을 떠난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차는 여전히 그에게 중요한 존재다.
조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차 한 잔 마시면 도움이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지구력이 생긴다. 마음이 편안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불안하면 절대 그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 불심으로 인내로

[조태정 작가가 그의 작품 중 '태평성시도'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신아일보]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 한 면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림. 조태정 작가가 특별히 아낀다는 '금강산도(金剛山圖)'다.
조 작가에 따르면 금강산도는 고려 말 금강산이 불교 성지로 주목받던 시대에 종교적 동기로 그리거나 중국 황실, 사신 등에 줄 선물용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민화 금강산도는 조선 후기 정선과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민간에서 모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 작가는 금강산의 1만2000봉 기암괴석을 스님 형상으로 의인화했다. 가정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금분(金粉)을 입혀 '불심작화(佛心作畵)'라 이름 붙였다.
조태정 작가는 "금강산도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그렸다. 산봉우리는 하나하나 스님의 형상, 부처님의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채색은 진짜 금으로 했다. 귀한 그림이라 생각해서 최고의 재료인 금분을 썼다. 금분을 쓰고 보니 작품 전체적으로 무게감과 깊이감이 보여서 만족감이 컸다. 정말 아끼는 특별한 그림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역작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도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태평성시도는 가상의 이상 도시를 김홍도의 영향권에 있는 화가군이 그린 궁중화(宮中畵)로 추정된다. 이상적인 태평성대의 나라를 꿈꾸며 간접적으로 세계 문물과 접하고자 하는 조선 후기 왕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그렸다는 배경을 갖는다.
조태정 작가의 태평성시도에는 약 2240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사대문 안 조선의 생활상을 조 작가만의 색과 화법으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장원급제 행렬과 결혼식 행렬에 동참한 사람들, 다양한 상점에서 상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 재주 부리는 원숭이와 그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갖가지 생활상을 담았다.
조 작가는 "은사(恩師)의 권유로 태평성시도를 시작하게 됐다. 하다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 그런데 또 어느 날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 차와 민화는 일맥상통

[조태정 작가의 태평성시도]
[출처: 신아일보]
조태정 작가는 금강산도와 태평성시도를 그리는 데 각각 3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작가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닦는 시간이었다.
조 작가는 민화의 매력을 한 마디로 '마음의 수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차를 마실 때도 마음의 수양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화를 그리는 동안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차와 민화는 일맥상통한다."라고 말했다.
조태정 작가는 '아헌(芽軒)'이라는 호(號)를 쓴다. 싹 '아'자에 집 '헌'자를 써서 '집에 싹이 돋는다'라는 의미다.
조 작가가 화지(畵紙)에 처음 붓끝을 대는 순간은 씨앗에서 싹이 돋는 순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대작이라도 그 시작엔 작은 점 하나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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