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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음식 속, 숨은 이야기를 마주하다 - 1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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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6-23 | 조회수 | 4968 |
음식 속, 숨은 이야기를 마주하다 - 1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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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궁중음식연구원을 만나게 된다. 소담스런 장독대와 치켜 올라간 기와지붕, 파란 여름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내는 공간. 그곳에서 환한 웃음이 매력적인 한복선 교수를 만났다.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건강학과 초빙 교수이자 요리연구가로 유명한 한복선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이자 ㈜대복 회장, 한복선 식문화 연구원장이다. 식품영양학, 외식경영학, 약선음식을 공부했다. 최근 [밥 하는 여자]에 이어 두 번째 음식 시집 [조반은 드셨수]를 출간하며 미식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교수라는 형식적인 딱딱함에서 탈피해서 자연스럽고 참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사실 카메라가 친근해서 큰 어려움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들을 해 왔으니까요. 물론 처음 카메라 앞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는 떨렸지요. 그런데 오래 하다보니까 이제는 카메라가 마치 시청자처럼 보여요. 그래서 카메라에 대고 “이해하셨어요?”라고 물어보면서 방송하곤 하거든요. 그러니 강의를 촬영할 때도 카메라를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듯이 촬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음식 이야기 자체가 딱딱한 게 아니니까요. 음식을 통해서 예절, 역사, 사람의 마음이나 철학까지도 모두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겁고 또 재미있게 촬영했습니다.

음식 안에 담긴 인문학적 요소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궁중음식은 제 전공 분야이기도 하고, 궁중음식이 한국음식 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있기 때문에 궁중음식을 풀다보면 모든 것들을 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요새 ‘엄마밥’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제가 엄마이고, 부인이면서, 할머니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밥을 해먹고 살아왔고요. 그러니까 밥 해 먹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죠. 만약에 제가 집에서 밥을 하지 않거나 말로만 할 수 있는 사람, 학문적으로만 가르치는 사람이었다면, 한국음식이나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음식 이야기는 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약선음식 분야의 경우에는 제가 한의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분들만큼 전문적인 깊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약선이라는 게 학문적인 영역과 조리학이라는 부분이 함께 매치되어야만 하는 음식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식품영양학, 조리학은 대학교에서 이미 전공했었고, 또 약선음식에 대해서도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이 교과목을 강의하게 됐어요.

인터넷 공부라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더군요. 디지털대학교 졸업을 했다고 하면 쉽게 했다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정말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직접 보니 정말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해요. 정해진 기간을 놓쳐서도 안 되고요. 아휴, 힘들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정말 아니더라고요. 차라리 가방 들고 학교 다니는 게 더 낫겠다 싶어요.
오늘 아침에도 기말고사 채점을 했어요. 다들 정말로 열심히 하세요. 문제는 학생들마다 학과가 다르니까 제출한 과제에도 아무래도 차이가 나죠.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하려니 참 어려워요.

가장 중요한 건 성의라고 생각해요. 포털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서 쓴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구별해 내거든요. 한 학생을 예로 들면, 그 학생은 자기 이야기를 썼더라고요. 음식을 정말 못하지만 이번 과목을 듣고서 음식을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요. 그래서 음식을 성의를 다해서 만들고 과제를 썼다고 말이에요. 또 집안에서 내려오는 음식에 대해 쓴 학생들도 있고요.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만나죠. 하지만 이런 과제들을 보면 교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간적인 교류 말이에요.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TV 프로그램을 한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진행하곤 했었는데요, 이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궁중음식 중에서 임금님의 보양식이 무엇인가?’였던 거예요. 사실 궁중음식의 보양식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하지 않았던 때였죠. 그래서 생각해보니 ‘보양 음식’은 곧 ‘약선음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이제껏 서양 영양학만 배워왔잖아요. 우리의 정체성과 음식을 알려면 ‘동양의 영양학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지금으로부터 벌써 12년, 13년 전이네요. 한의사 선생님,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그룹으로 모여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때 최윤희 교수님(한방건강학과)도 함께 했었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만나 학교 가기 전에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5년간 계속했죠. 참 미친 사람들 같았어요.(웃음) 그 후에는 자율적으로 공부해 왔고요.

그림이나 음식은 창작이죠. 쿡방, 먹방도 결국 창작의 일이거든요. 창작을 하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그러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잖아요. 또 SNS에도 올리고요. 그래서 그렇게 재미있는 거예요. 그릇이나 재료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런 방송을 찾는 것은 당연한 거죠.
한 가지 염려는 창작과 즐거움, 모두 좋지만 음식이 너무 본(本) 없이 마구 흘러가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밥을 다양한 그릇에 풀 수 있지만 기본적인 밥공기, 밥에 대한 본은 잘 알아야 하는 것이죠.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품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음식을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거나 ‘이 쌀알이 어떻게 내게 왔느냐’ 하는 것도 모두 기품을 생각하는 것이죠.

요리는 창작이며 예술이잖아요. 저는 궁중음식의 기본 정신은 지키되 창작적인, 디자인적인, 조금 변화가 있는 것이 좋아요. 그 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음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쉐프의 자격일 수도 있고요.
또 여러 가지 일에 정신을 분산해서 해내는 능력이 요리하는 사람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밥이 타고, 국이 끓고, 다른 음식이 졸여질 때 사방으로 동시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주 꼼꼼하게 한 곳에 집중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이 좀 더디지요. 또 정해진 시간 안에 음식을 하는 것이 쉐프의 자격이기도 하고요. 집에서 밥상을 차릴 때도 가족들이 기다리지 않게 얼른 해야 하잖아요. 그런 것은 타고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공동생활을 통해 학습된 거죠. 또 저는 음식은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이 이런 음식을 좋아하니까 이 음식이 맞겠다’ 라거나 ‘배가 고픈 것 같으니 빨리 해줘야 하겠다’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음식 하는 것이 노동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즐거워요. 그게 제 생활이고 그대로의 저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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