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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의 섬세한 아름다움 세계에 알릴 겁니다-한국복식과학학과 이순란 학우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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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09-05 | 조회수 | 3960 |
한국의 섬세한 아름다움 세계에 알릴 겁니다-한국복식과학학과 이순란 학우님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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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의 기세가 무엇이든 녹여버릴 것 같은 여름의 끝자락, 대구를 찾았다. 지난 8월 19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 위촉된 이순란 명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순란 명인이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는다. 벽면을 빼곡하게 메운 색색의 원단이 인상적이다. 탁자 위엔 짓고 있던 누비옷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오차 없이 한땀 한땀 정렬된 바느질은 이 명인의 솜씨를 가늠하게 한다.
이순란 명인은 ‘달구벌 누비 명인’으로 선정된 손누비옷의 달인이다. 40여년간 누비옷 제작과 연구에 몰두해 온 이 명인은 2015년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학과에 입학하며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약 40년간 누비옷을 만들다 보니 작품들이 많아졌어요. 전시회나 작품전 출품, 출토복식 복원 등을 해 오면서 그런 흔적들이 하나, 둘 이 곳에 남아 있기도 하고요. 오래 전, 한 스님의 승려복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가보처럼 할머니로부터 제게로 남겨졌지요. 기간이 100년은 되었을 겁니다.

대구시에서는 매년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지역 장인들을 ‘달구벌 명인’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지역산업의 경쟁력도 강화하고 숙련 기술인들을 우대하는 풍토도 조성하기 위해서지요. 전 2014년 달구벌 누비 명인으로 선정됐어요. 명인들에겐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금이 나오고, 명인들이 서로 모여서 후학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해요.

사실 원디대 입학 전에 일반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했던 터라 대학원을 가려고도 했었어요. 그래서 지인이 원디대에 입학해 공부하는 것을 보니 저도 배움의 욕구가 다시 밀려오더라고요. 배움이란 끝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디지털대학교이니 가게든, 집이든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입학을 결정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에요. 학교를 직접 가지 않아도 되니 시간도 벌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제겐 베스트였죠. 늘 마음 속에는 배움을 갈망하는 열망이 있거든요.

경험은 많더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나 감성은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어요. ‘요즘은 어떤 새로운 것이 있나’하는 갈증 같은 것이죠. 그래서 사이버대학교에서 나이을 초월해서 젊은 사람들이랑 함께 배워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제 실력을 평가받아 보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더라고요. 그만큼 노력도 더 하게 되고. 그리고 상을 받으니 또 다른 전시회나 공모전에서 출품을 요청받는 경우도 생기고요. 강의를 나갈 때도 수상경력이 저만의 경력이 되니까 도움이 많이 되었지요.
(※ 이순란 명인은 ▲201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 신지식인 선정 ▲2014년 국토해양환경미술대전 환경부장관상 수상(공예부문 대상) 등 총 40여회의 전시회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직접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가게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젊어진다고 할까요.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니 마인드가 좀 젊어지는 것 같아요.
또 오늘 못 들으면 내일 들으면 되니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지요.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일반 대학교에서는 교수님 강의가 끝나면 더 이상 들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여러번 돌려볼 수 있으니 한결 이해하기가 더 쉬워요.

사실 컴퓨터 활용이 조금 어려웠지만 조금씩 노력해 나가고 있어요. 사이버대학교 입학 전엔 컴퓨터를 만진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필요한 건 자녀들에게 부탁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느리더라도 제가 컴퓨터를 직접 다룰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공부를 하려면 더 부지런해야 하더라고요. 시간을 더 쪼개서 알차게 말이죠. 보통 가게일을 마치고 가족들을 챙긴 뒤 저녁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과제를 했어요. 그리고 아침 5시 30분경에 일어나는데 그 때 일과를 시작하면서 못했던 공부를 잠깐 하기도 해요.

어렸을 때 조모님이 사찰의 스님에게 옷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복(福)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스님들에게 옷을 만들어 드렸어요. 본래 누비옷이 스님들의 헤진 승복에 천을 덧대 기워 입는 것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시어머니가 하시니까 어머니는 자연적으로 이어서 하게 되셨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배웠달까요. 어릴 적에 바늘과 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어요. ‘두루판’에 누비를 얹어 놓으면 제가 그걸 보다가 바늘에 찔리기도 했는데 그것마저도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바느질 하면 못 산다. 이 힘든 것 하지 마라.’
처음에 제가 이 일을 한다고 했더니 친정어머니는 극구 말리셨어요. 편하게 살라고. 어렸을 때도 바느질을 하면 못 만지게 했었죠. 그런데도 이게 좋으니까 전 계속했죠. 바느질 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건 결혼한 후에요. 제가 한복의 깃에 솜을 넣어서 옷을 해 입었는데 그 옷이 예쁘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누비옷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게를 시작한 건 약 30년 전부터고요.
그렇데 말리던 어머니도 지금은 어머니 당신보다 낫다고 하세요. 그리고 제가 환경부장관상 등 큰 상을 수상했을 적인 ‘그 때 내가 말렸으면 큰일날 뻔 했다’며 뿌듯해하고 좋아하세요.

오래 했기 때문에 싫증이 난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뭐, 작은 어려움들은 있었죠. 옛날엔 요즘처럼 쇠로 된 골무가 없었어요. 천으로 된 골무를 썼는데, 손이 남아나질 않았어요. 바늘에 찔리는 게 예삿일이었지요. 특히 누비라는 게 한땀한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바느질로 옷을 짓는 일이니 더 했지요. 그리고 쇠골무를 써도 장시간 손가락에 끼고 있으니 독이 올라 염증이 생기고, 물집도 잡히고. 그렇게 몇 번을 짓무르니까 이젠 굳은살이 생겼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제가 안타까운 건 손으로 한땀한땀 누비다 보니까 수요에 맞춰서 다 공급하질 못한다는 거예요. 일반옷은 재봉틀로 제작하니 짧은 기간에 완제품이 나올 수 있지만 누비옷은 빠르면 일주일, 길게는 한달 정도 걸려요. 밤을 샐 때가 많지요.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마음으론 다 해드리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또 저를 찾아주신 만큼 완벽하게 해 드려야 한다는 마음도 있고요.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고, 스트레스였지 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색다른 바느질 기법을 보면 ‘이런 게 있었구나. 어떻게 하는 거지?’하고 또 공부하고. 제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출토복식은 정말 바느질 기법이 대단해요.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정교하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이죠. 지금보다 환경이나 도구도 열악했던 시절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옷을 보면 어떤 때는 소름이 끼치기도 해요.

출토복식 재현이란 말 그대로 출토된 옛날 복식을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론 출토복식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데, 이 일을 오래 하고 몇 번 출토복식 재현을 하다보니 대학교들에서 연락이 옵니다. 연락이 오면 직접 가서 옛 복식을 실측하고 본을 떠요. 그것을 바탕으로 최대한 똑같이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복식은 기존에 발굴된 출토복식,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기도 합니다. 출토복식 재현은 물론 다 무료로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재능기부라고 할까요.

본래 스님들의 승복 누비를 주로 많이 지었었어요. 그러다 대구박물관에서 우연히 출토복식을 접했는데, 그 옷의 바느질이 기계로 박은 것처럼 너무나 정교했어요. 거기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대구박물관에 유물을 그대로 재현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실측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옷을 재현해 박물관에 기증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요즘은 출토복식이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곤 하지요.

옛날 옷을 접할 때마다 빨리 하려고 하기 보다는 정말 정성을 들여서 한땀 한땀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옛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복원하려고 노력하지요. 바느질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면 바느질에도 그대로 나타나요. 누비란 바느질 한땀 한땀이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한땀 한땀에 정말 정성을 들여야 하지요. 그건 출토복식 뿐만 아니라 모든 누비옷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누비옷을 옷이라고 하지 않고 작품이라고 합니다. 손님들이 제가 지은 입고 ‘정말 예쁘다’고 말해줄 때 정말 보람을 느끼죠. ‘이 일 하길 잘 했구나’ 싶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해 일입니다. 지난해 상원사 문수보살 가사가 출토되었어요. 430년정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유물로 등재가 되어 다시 무덤에 넣을 수 없기에 저에게 가사를 재현해 달라고 의뢰가 왔습니다. 가사란 부처님이 제일 마지막에 입은 옷이에요. 저는 가사를 한번도 안 지어봤기에 못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간곡히 부탁하시기도 하고, 100년이 될지 200년이 될지 모르지만 후세에 다시 발견되는 가사가 제 손으로 지은 것이라면 의미가 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가사를 지었습니다. 바느질을 아무리 잘해도 인연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이걸 제가 할 수 있었다는 데 정말 큰 보람을 느꼈고, 저로서는 정말 큰 영광이었습니다.

네. 제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작은 소품이나마 누비에 대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누비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기계·재료·화학 등 총 11개 분야 숙련기술인 250명을 ‘제8기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로 위촉했다. 산업현장교수는 10년 이상 산업 현장에서 쌓은 고도의 숙련기술을 학교 및 중소기업에 전수하기 위해 2012년 시작한 제도다. 현재 대한민국명장, 국제기능올림픽 입상자, 기능한국인, 기능장, 기술사, 경영지도사 등으로 이뤄진 산업현장교수 998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시회도 하고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그 솜씨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게 최종적인 꿈이지요. 나중에라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2월 졸업 후,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사람의 출생부터 일대기에 걸친 다양한 누비옷을 연결하여 제작해 보고 싶어요. 사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 중에도 누비옷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2~3년 후 작품이 완성되면 누비옷을 알릴 수 있는 전시회를 가질 생각이에요. 나아가 해외에서도 진행하고 싶어요. 세계에 ‘이런 바느질법을 가진 누비옷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거든요.
LA 한인축제에 초청을 받아서 작품을 전시했었는데, 외국인들이 ‘원더풀’이라며 놀라워하더군요. 또 작년엔 일본에서 궁중복식 착장식을 시연했는데, 그 중 누비옷을 보고 모두들 ‘정말 손으로 한 게 맞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일본에 와서 강의를 해 달라는 제안도 받았지요. 그런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씩 열심히 해 나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와 함께 하고 배우고 싶은 후배들이 있다면 함께 할 생각입니다. 체계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후배들에게 기능을 전수하고 싶어요.

제 원칙은 일을 함에 있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야 한다는 거예요. 돈만 생각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누비는 참 비효율적이죠. 당장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입을 창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배우는 과정도 길고.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하다보니까 몇 십년동안 할 수 있었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상도 타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외국에 초청도 받고.
누비라는 게 인내심을 가지게 해요. 마음도 차분하게 해 주고. 전 누비를 시작하고 화를 잘 안 내게 되더라고요. 이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저처럼 재미있어하고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전수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차근차근 누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길 기대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자 대구의 뜨거운 공기가 훅하고 들어왔다. 이순란 명인의 열정은 어쩌면 이 뜨거운 대구의 여름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자녀, 손주들에게 ‘바느질을 참 잘하고 사랑했던 사람, 열심히 살았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이순란 명인. 그녀의 뜨거운 열정이 세계로 나가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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